December 12, 2024

광주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회상과 자아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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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www.latimes.com/world-nation/story/2023-04-24/south-korea-former-soldier-believed-accomplice-murder

최병문은 백색 미니버스가 공격받던 날이 오전 10시나 11시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은 맑은 봄 날이었다.
그가 서 있던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서, 미니버스는 광활한 보리밭 사이를 지나고 있었고, 11특수부대의 동료 특수요원들이 양쪽에서 총을 쏘고 있었고 차는 멈춰섰다.
최는 조사를 위해 도로를 따라 달려갔다.
버스의 창문은 깨져 있었고, 차체는 총알 구멍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벌집 같았다.
사병인 최는 그곳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그를 지휘한 중위는 그에게 버스에 올라가서 시신의 수를 세라고 명령했다.
최는 통로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며 시체를 밟지 않으려 했다.
총 15명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두 명씩 서로 엉켜 의자 아래에 있어 그들의 피로 미끄러운 바닥에서 걷기가 힘들었다.
“그때 그들이 처형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최는 회상하며 말했다.
“그들은 살아남으려 애써 의자밑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광주의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던 이들은 한국 국기를 손에 들고 시내버스를 막아선 채 앉아 있었다.
명백한 공격의 현장은 1980년 5월 27일의 상처를 지금도 잇고 있었다.
최는 헬리콥터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찾아 나섰음을 믿었다.
기억에 의존했으나 40년 후, 그날 우연히 마주쳤던 소녀는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을 것이다.
“가끔은 내가 그 부대에 편성되었고 그 날 그 장소에 있었던 것에 대해 원망하게 된다.”
최는 말했다.
그러나 2020년 겨울, 최는 자신의 죄책감과 고백의 예상치 못한 길을 걷게 되어 소녀를 다시 만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1980년 5월 23일, 광주는 포위되었다.
추두환 군사 정권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여 계엄령을 선포했다.
광주 거리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은 폭력적 반란자로 낙인찍히며 약 3000명의 정예 공수부대가 파견되었다.
최병문(21)은 그 중 한 명이었다.
최의 군 행보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10일은 공수부대가 폭격 작전 중인 순간 총과 곤봉으로 시민들을 폭력을 가한 모양새였다.
최는 그들이 단지 명령을 수행했다는 것을 주지하면서도, 뒷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
최는 금융업에 종사하며 기본적인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가 처했던 아픔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
그러던 중 2020년 겨울, 그의 전화기에 받아본 사람의 변화에 대해 알아내게 되었다.
“우리가 추적해온 군인들과 만나게 해야 하며, 당신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는 대옵 알림을 통해 지켜보는 듯 다시 아마추어 스페셜 테스터 면에서 원치 않던 고백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 후 최는 자신의 군복무기에 대한 이러한 회상으로 하나하나의 기억을 복원하고자 애썼다.
크고 작은 기억의 산발하는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언급되지 않은 그 당사자들이면 모두가 바뀔 수도 있지 않겠으며, 결국 그 순간은 역사이자 그 안에 남은 감정들이다.
복구되는 회상은 비단 허구적 안타까움 그 이상의 것을 말했다.
그 날 최는 그 누구도 그날 그를 회상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그 순간 속에서 비로소 전환점을 경험하게 된다.
촬영 감독 김무성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이 모든 것을 더욱 감정적으로 펼쳐나간다.
최는 그 가치가 담겼던 순간에서, 또는 낙하산 부대가 그 역할을 했던 순간에서, 극복해야 하는 갈등을 배우고기도 했다.
그의 고백이 결국은 의도와 선의가 잘못 선의와 타협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보았다.
최는 그 모든 일련의 고백을 통해 내 안의 상처가 재확인되었다고 말했다.
“그 모든데 대한 내 길은 모두 복잡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민주화의 시간은 어떤 것인지서 자주 독립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 질문과 대답은 양극에서 각기 다른 옷을 걸치고 있었다.
“역사는 너무 복잡해? 아니면 간단한가?”
그렇게 마주친 슬픔을 안고 서로의 길에서 시선이 통하는 순간들을 겪는 것 역시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