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 뿌리를 둔 인하대학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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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www.hawaiinewsnow.com/2023/10/20/how-hawaii-inspired-built-mit-korea/
하와이뉴스나우에 따르면, 한국 인하대학교는 고등 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 학생들이 경력과 개인적 성장에 매진하는 광활한 캠퍼스를 갖추고 있다.
인하대학교를 독특하게 만드는 점은 그것이 ‘아로하’라는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1903년, 미국에 처음으로 이민 온 한국인들은 하와이에 정착했다.
그들은 인하대학교를 세우고, 한국의 한 나라를 변화시켰다.
인하대학교 총장인 명우 조는 통역사를 통해 “‘인’은 인천을 의미하고, ‘하’는 하와이를 의미한다. 인천은 그들의 출발 도시이고, 하와이는 그들의 목적 도시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하대학교의 의미는 이러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름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인하대학교는 1954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며 하와이의 오랜 거주자인 이승만에 의해 한국-미국 협력학교로 설립되었으며, 한국 디아스포라의 기금으로 세워졌다.
한국의 미국 이민은 12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하와이에서 시작되었다.
명우 조는 “하와이는 우리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이다. 왜냐하면 하와이에 인하대학교의 많은 동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와이의 한국 커뮤니티의 의미 있는 열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것을 제공하여 일본 식민 지배와 한국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국을 재건하려는 의지였다.
렉스 킴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중 하와이에 이주했으며,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숙련된 인력이 회복의 열쇠라고 믿었다.
“생각은 한국을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산업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학을 세우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을 교육하여”라고 킴은 설명했다.
이 아이디어와 기금은 하와이의 한국 기독교 학원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최초로 이민자 자녀를 위해 세운 학교로 카이무키에 세워졌고 현재는 칼리히 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이전되었다.
그 학교가 1947년에 문을 닫은 후, 이승만은 24에이커의 부지를 개발자에게 팔았고, 그곳에 한국 학교를 의미하는 ‘쿨라콜레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승만은 그 돈으로 인천에 폴리테크닉 연구소를 세웠다.
“하와이에 사는 한국인들은 MIT의 한국 버전을 세우고 싶었다”고 인천 시장 유정복이 전했다.
현재 인하대학교는 한국의 상위 대학 중 하나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의 한국 플랜테이션 노동자와 근로자들의 헌신으로 세워졌다.
“교육, 교육, 교육, 교육. 왜냐하면 그들은 한국이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나라를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 한 일이었다”라고 한국 이민 연구소의 이덕희 이사가 말했다.
인하대학교가 개교한 지 20년 후, 하와이 대학교의 한국학 센터가 개설되었다 — 북미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큰 한국 센터이다.
“따라서 자금의 삼분의 일이 한국에서 오고, 다른 삼분의 일이 지역 사회에서 오고, 마지막 삼분의 일이 정부에서도 나왔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 보존과 미래 준비를 위한 협력 같은 것이다.
그런 도움과 지원이 없었다면, 센터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단계웅 바이크 센터 디렉터이자 하와이 대학교 교수는 말했다.
두 도시, 두 자매 대학, 학생 교류로 연결된 두 장소가 아로하로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 — 이름과 정신 모두에 있어서.